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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바다가 넘실대는 태평양의 한 귀퉁이..... 과거의 아픈기억들을 한아름 안고 있는 소박하고 진솔한 우리네 고을이 있다. 조선최고의 유배지이면서,일제의 아픔이 잔존해 있는 대정고을!!! 이제, 그 곳을 돌아보며 역사속으로 들어가 보고 싶다....

제주에서도 특히 대정읍쪽으로 유배자들이 많이 거주하였는데, 그 대표적인 인물이 너무나도 유명한 추사 김정희선생이다.

추사는 조선조 헌종6년(1840)10월 1일 윤상도 옥사에 연류되어 55세의 나이로 유배되었다. 그리고, 송계순의 집을 적소로 삼았다가 수년 후 강도순의 집으 로 옮겨 헌종 14년(1848년) 12월 6일 까지 유배생활을 한 곳이 바로 지금의 추사 적거지이다.

먼저, 대문으로 한발 앞서 들어가면, 추사의 소박한 기개가 느껴 지는옛스러운 제주의 가옥이 나타난다. “추사는 9년이란 시간 동안 이곳에서 무슨 마음으로 시간을 보내게 되었을까..?” 하는 비련한 천재의 마음을 헤아려 보려 노력하게 된다.

그는 자신의 작품활동과 별개로 이 지방의 학문과 서예를 비롯 하여 예절과 풍속 등 다방면에 걸쳐 주민들의 정신생활에 크나큰 영향을 주었고, 그당시 교육기관이던 대정향교에는 그의 작품인 의문당이라는 현판이 있다. 어쩌면 제주의 소박한 서민들의 마음이 추사의 작품에 영향을 미쳤을지도 모르리라…

대정현이 실치된지 2년이 지난 1418년(태종18) 현감 유신(兪信)이 백성을 보호하기 위해
만든 읍성의 터, 성의 규모는 둘레 4.8 높이 17자 4치 성벽위에는 미석과 여장등이 설치 , 성문은 동문,서문,남문,북문이 만들어졌으나 북문은 오래되지 않아 폐쇄, 성내에는 관아건물과 창고 및 우물 ,5개소의 봉수와 9개소의 연대를 설치하였다.

성 안에는 객사동헌위사(衛舍)향사당 등의 관청이 있었고, 동서남문 앞에는 옹중석 (돌하르방)이 각각 4개씩 세워져 있었다. 현재 보성리 일원에 높이 2m의 석성이400m 정도 남아 있으며, 일부는 복원되었다.

주위에는 서민의 삶이 그대로 묻어나는 밭 들이 펼쳐져 있어 모든이들이 향교에서 지혜를 얻으려 하는듯하다.

대성전(大成殿)은 1669년(현종 10), 1688 (숙종 14), 1752년(영조 28), 1835년 (헌종1)에 중수하였고, 명륜당(明倫堂)은 1772년(영조 48)에 중건하였다.

이렇듯 여러 차례의 중개축을 거친 뒤, 1993년에는 남제주군에서 대성전을 다시 중수하였다.

현재 경내에는 각 5칸(약 50평) 의 대성전,명륜당, 동재, 서재, 신삼문, 대성문, 동말문, 동정문등이있다. 그리고, 제주에 있는 세 향교 중 원형을 가장 잘 간직하고 있다.

1950년….6월 25일…. 전장의 화약고가 터지면서 많은 이들이 쓰러져 갔다. 제주도 역시 예외는 아닌지라… 소위 예비검속이라는 피바람이 전도에 휘몰아쳤다.
그 예비검속의 대상자들을 살펴보면 전에 검속되었다가 일차 석방 되었던 사람이나 말 그대로 애매하게 밀서(무고하는 행위)에 의해 서 명단이 올라간 사람, 경찰에 잡혀가서 그 기록이 남아있던 사람들이었다.
전쟁이라는 무지의 상황과 환경이 이름없는 서민을 무참히 살해하게 된것이다.
이러한 검거선풍으로 당시 모슬포경찰서 관할구역인 대정, 한림, 중문, 안덕 지역에서도 130여명이 잡혀갔다. 이들은 대정극장 자리에 있었던 창고에서 갇혔다가 음력 7월 7일 새벽에 송악산 섯알오름 어느 옴팡진 구덩이로 끌려가 그 속에서 학살당한다.
이 사건이 6.25이후 제주도에서 가장 큰 학살사건으로 볼 수 있는소위 「섯알 오름의 대학살」 사건이다.

섯알오름 사이로 그들의 두려운 표정들이 가슴을 후비는 듯하다. 그 후 시신들을 찾으러 유적들이 갔지만 군인들이 오히려 총을 들고 보초를 서면서 그들의 접근을 막았다. 이 학살은 양력으로 8월에 집행됐으므로 그 찌는 듯안 여름의 시체 썩은 냄새가 겨울까지 계속되어 근처에는 갈 엄두도 내지 못했다. 3년이상 방치됐던 시신들은 노천에서 비바람과 폭양, 한설에 방치되었던 시체들에는 구더기가 하얗게 일고 뼈들이 서로 얽혀 있어서 차마 눈뜨고 볼 나위가 없었다. 유족들은 흩어진 뼈들을 모아 머리뼈 하나, 큰 뼈 하나에 작은 뼈 몇 개씩 짝을 지워 어린아이산(무덤)을 쓰듯 사계공동묘지에 일렬로 묻고 「백조일손지묘」란 비석을 세웠다.

2차대전 당시 남제주군 대정읍 안덕면에 만든 일본의 비행장 시설이다.

태평양 전쟁이 막바지에 이른 1945년. 일본 제국주의는 제주도를 자신들의 본토 사수를 위한 최후의 보루로 삼고 제주도에 각종 해안기지와 비행장, 용이한 작전수행을 위한 도로 건설 등 각종 군사시설 건설에 나서는 한편 제주 섬사람들에게 식량지원 등도 요구하였다.
* 추사적거지
입장료 - 어른 (개인 : 500 / 단체 : 400), 군인,어린이 (개인 : 300 / 단체 : 200) 도민은 무료입장
주차료 - 소형 : 800원 중,대형 : 1,000원

1. 제주시 출발 : 제주시 → 서부산업도로 → 대정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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